검색

위로와 용서라는 큰 울림

프란치스코 교황 순교자 124위 시복미사 집전

- 작게+ 크게

최영숙
기사입력 2014-08-18


 

▲ 교황  광화문으로 들어서다   ©최영숙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한 순교자 124위 시복 미사가 지난 16일 10시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교황이 시청 방향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환호했다.
 
▲ 순교자 124위 시복 미사가 열리는 광화문 일대의 아침 풍경     ©최영숙
 
비가 온다는 소식에 걱정했는데 다행히 날씨가 화창했다. 다행이었다.
 
▲ 한국 국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광화문으로 들어서는 교황     ©최영숙

광화문 광장으로 신자들이 모여들었다.
 
▲ 광화문 풍경     ©최영숙

교황에게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간다는 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는 같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V자를 그리며 경찰과 함께 퇴장했다. 충돌은 없었다.
 
▲ 기념품 가게     ©최영숙

교황방문 기념품 가게에도 사람들이 넘쳤다.
 
▲ 가족과 함께 나와 환호하는 사람들     ©최영숙

행사장에 들어갈 수 없었던 사람들은 대형 스크린에 나오는  교황을 담았다.
 
▲ 세월호 유가족들을 보듬은 교황     ©최영숙


진상규명을 원하는 세월호 가족들을 보듬은 교황과 이를 지켜보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은 우리시대가 무엇 원하는지를 묻게 했다.
 

▲ 쓰레기를 담고 가는 신자들과 남겨진 큰 쓰레기를 치우는 자원봉사자들     ©최영숙


100만명이 운집했던 광화문 광장 일대는 쓰레기를 들고 나가는 신자들과 큰 쓰레기들을 따로 정리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마치 아무 행사도 없었던 듯 깨끗한 거리로 돌아갔다.

▲ 100만 명의 인파가 잠시전까지 머물렀다고 느껴지지 않는 광화문 광장 주변     ©최영숙


방금 전에 100만 인이 모인 자리는 깔끔했다.
 

▲ 시복 미사를 받은 순교자 124위의 초상화와 십자가     ©최영숙


200년 전 순교한 124분들의 죽음은 말할 수 없는 참극이었다.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참수, 국문효수, 능지처참, 교수, 장사, 옥사 등을 당했다. 남녀노소, 양반과 상민, 천민 등 구별이 없었다. 또한 지역도 강원도, 전라도, 경상도, 서울, 충청도 등 전국 각지였다.  
 
이분들은 오늘을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 경복궁 담장에 걸린 교황청 깃발     ©최영숙



교황이 한국에 머문 시간은 100시간 정도였다. 그러나 그 파급효과는 막대했다.  이분은 소외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가장 윗자리에 앉게 했다.
 

▲ 광화문 시복식 모습       ©최영숙


이분이 한 일은 안아주는 일이었다. 지켜봐주고 위로해주는 것만으로도 무한한 위로를 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고통받고 소외받는 이들과 단절되었는지를 보았다.
 
교황은 떠났지만, 이분이 남기고 떠난 뜻을 우리는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이는 오롯이 남겨진 이들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URL 복사
x

PC버전

Copyright ⓒ 시흥장수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