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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다가 시를 쓰곤 했죠”

가슴을 적시는 시를 쓰고픈 시인 이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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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윤빈
기사입력 2010-06-01

이연옥 시인은 1997년도 월간 <문학공간>에 ‘밭을 매면서’ 외 3편으로 등단했다. 이후 <산풀향 내리면 이슬이 되고>, <연밭에 이는 바람> 등의 시집을 펴내기도 했다.
 
농촌에서 농사를 짓고 살아 주로 서정적·향토적인 시상을 떠올리게 된다는 이연옥 시인. 봄에는 알타리, 여름에는 대파, 가을에는 콩을 심으며 시를 써 왔단다. 아직은 창의성이 부족해 스스로 만족 못한다는 그녀. 좀 더 다른 시각, 깊이 있는 생각을 갖기 위해 시 창작 수업을 들으며 공부하고 있다는 그녀를 만났다.

젊었을 때 시인을 동경했지만 글 쓰는 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는 그녀. 경기도 시흥에서 남편과 함께 포도밭을 가꾸고 젖소를 키우며 전형적인 농사꾼의 아내로 살아왔다. 시집 갈 당시만 해도 시부모, 시누이 등 대가족과 살아서 자기만의 시간을 갖기 힘들었다고.

“며느리, 형수, 아내로서 정신없이 살았죠. 그러다가 가족들이 결혼도 하며 점차 흩어지고 목장 일도 접게 되면서 남는 시간이 그렇게 공허할 수가 없었어요.”

그녀는 ‘이렇게 아줌마로 살다가 흙에 묻히는 건가’ 허무한 마음이 생겨나 스스로 고민했다.
“나중에 지역에서 시인이 운영하는 문학동아리에 가입하게 됐어요. 이후 지역 백일장 등에서 상을 받게 돼 적성에 맞는가보다 싶었죠.”

첫 시집을 낸 뒤 이론적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다는 이연옥 시인. 그녀는 다음해인 2000년에 한국방송통신대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그녀는 농사를 지으면서도 틈틈이 강의 테이프를 들으며 공부를 했다고 한다. 학구열에 심취해 4년만에 졸업을 할 수 있었는데 마지막 기말시험을 치르고 나자 갑자기 머리가 새하얘지고 허탈감이 밀려오더란다. 가슴이 메말라버려 견딜 수 없었던 것. 시험장 인근 중고책방에 가서 처음 보는 가게 주인에게 “눈물 펑펑 흘릴 수 있는 책 좀 추천해달라”고 울면서 얘기했다고. 이론적 학문만을 주로 접하면서 시적 감수성은 줄어들어 불안했기 때문이었단다.

50대 나이에 한 번 사그라진 감수성을 불러일으키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녀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2007년부터 문인협회에서 일했다. 다양한 경험을 쌓던 도중 이듬해 운 좋게 시흥시 지원을 받아 생태시를 쓰게 됐단다. “다시금 가슴을 적시기 위해 책도 많이 보고 자연과 교감을 시도하며 부단히 갈고 닦았죠. 시상들이 밭을 매다가도 떠오르고, 자연 풍경을 바라보다 찾아오기도 했어요. 느낌이 오면 메모해 두었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을 새벽에 따로 정리했어요.” 이 동문은 어디선가 본 듯한 구절이거나 기존의 시상과 비슷한 느낌이 들면 바로 버린다며 미흡하지만 올해 하반기 쯤 새 시집이 나올 예정이라 설레는 기분이라고 밝혔다.

이연옥 시인은 아직까지 ‘시인’이란 명칭이 낯설고 부끄럽단다. 시에 공을 덜 들였던 창피한 기억들도 있다고. 하지만 문학이란 게 없었다면 무엇을 하고 있을지, 어떻게 시간을 보냈을지 모르겠다는 그녀. 무미건조한 일상을 보내며 살아가기보다 자신의 내면과 상상력을 끌어내는 일이 좋단다.

“힘들고 어렵지만 세상의 여러 시각을 나만의 문학으로 접근하고 표현하는 일은 가치가 있다고 보거든요.”

그녀는 “늙었을 때의 풍요와 보람은 현재에 안주하지 않는 삶 속에 있는 게 아닐까요?” 웃으며 되물었다.


 
이 기사는 한국방송통신대학보에 게재된 기사를 형식에 맞춰 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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