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조용히 응시하는 슬픈 눈

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김규환 화가

- 작게+ 크게

민정례
기사입력 2010-10-28

그의 그림을 처음 본 것은 시흥시청 2층 복도를 지나칠 때였다. 나무 토막을 외양간 창문처럼 액자로 이어 붙인 작품 속에는 긴 속눈썹과 검은 눈동자를 가진 소가 나를 향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또다른 그림을 만난 곳은 작년 이맘 때 쯤 대야복지관에서 열린 시흥미술제에 출품된 도마 위의 푸른 고등어였다. 방금 가게에서 사와 요리를 위해 도마 위에 얹혀진 고등어처럼 싱싱함이 살아 있는 그림이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두 그림이 한 사람의 손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저 미술 쪽에 무지한 필자의 눈에 인상깊게 다가온 두 그림이었을 뿐이었다.
 
두 그림을 그린 화가를 직접 만난 것은 어느 화랑의 개관식에서였다. 화랑에 전시된 소 그림의 화가라는 인사말을 듣고 그림을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함께 전시된 도마 위 고추 그림을 보며 두 작품이 한 사람의 솜씨라는 것을 알고 탄성을 질렀다.
 
그림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지만 나를 바라보던 소의 슬픈 눈동자를 잊을 수 없었다. 반가운 마음에 성급히 인터뷰를 요청했다. 기꺼이 인터뷰 요청에 응했던 김규환 화가는 "거창하게 인터뷰는 됐고, 그냥 작업실에 놀러오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헤어졌다. 
 
그가 소를 그리는 이유
 
미산동에 위치한 화실에는 벽쪽 가득 소 그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제각기 다른 그림이었지만 눈빛은 한결같았다. 그림의 이름대로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속눈썹부터 목가의 주름까지 섬세하게 표현된 소는 무엇을 응시하고 있을까.


김규환 화가에게 누구나 궁금해 하는, 지금껏 가장 많이 받았을 질문을 또 한번 해야했다.
 
"왜 소만 그리세요?"
 
소는 그의 유년시절을 함께 보낸 익숙한 존재였다. 어렸을 때부터 소를 키웠고 학교를 마치면 '꼴을 베러' 갔다. 냇가에 가도 한 쪽에 소를 메어놓고 풀을 먹이며 그 옆에서 실컷 놀고 다시 집으로 함께 돌아가기도 했다.
 
이런 유년시절의 추억은 여전히 아름답게 남아있다.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웠지요. 그것을 그림으로 그릴 뿐입니다."
 
유종인 시인은 김규환 화가의 그림 속 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김규환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소는 세속의 인간들이 보여주는 수많은 분별심에서 비켜서 있다. 세속의 우리가 보여주는 다양한 감정의 추태와 이성의 가면을 쓴 분열의 양상을 말없이 지키고 있다. 소의 그 순정하고 슬픈 두 눈망울에는 우울과 울분, 속 깊은 슬픔의 눈빛이 도사리고 잇다. 그것은 김규환이 세태를 바라보는 심중일지도 모른다. 그의 고향 평창에서 보고 자란 순정하고 우직한 소의 모습과는 자꾸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세태에 대한 그의 저항적인 슬픔을 그의 소그림들은 말없이 보여준다. 거기엔 도시적 공간의 어둠 속에 캄캄하게 매물돼 가는 인간성에 대한 깊은 우려가 소 그림의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의 화실이 위치한 미산동 뒤편에는 소 축사가 있다. 가끔 그 곳의 소들이 그의 모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의 소는 그렇게 슬퍼 보이지 않는다.
 

그의 고향 평창에서 보았던 소는 주로 밭갈이용이었다. 코뚜레에 자유를 빼앗기고 항상 등에 무거운 짐을 얹은 채 하루 종일 일만 했던 소. 소에게는 힘들게 하루를 보내는 우리 인생 역정이 보였다.
 
그래서 그가 그리는 소는 평화롭게 보이지만 눈이 슬프다. 마음 한쪽 구석 상처와 외로움이 깃들어 있다. 그림 속의 슬픈 소는 그것을 그리는 김규환 화가와 닮아 있다. 어느새 소는 자화상이 되어 버렸다.
 
그는 "대부분 그림은 그리는 사람을 닮아 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고 말했다.
 
화가는 "화가 많이 나는 직업"

어릴 때부터 품었던 막연한 꿈이 실제가 되었던 것은  원하던 일을 할 수 있다는 가슴설렘도, 부푼 기대도 아니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힘겨운 노동을 통해 생계를 꾸려가던 그가 붓을 든 것은 더이상 건강상의 이유로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노동일을 하다 허리를 다쳐 여러번 수술을 받았으나 다시 일을 할 수는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노숙자가 될지도 모를 처지였다. 아내에게 다른 일을 할 수는 없으니 꿈꾸던 길로 가겠다고 말했다. 아내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가정과 그림을 맞바꿨다.
 
그림이 운명처럼 다가온 것은 아니었다. 할 수 있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 뿐.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이게 내 길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생활은 고달프다. 경제가 어려우니 그림은 잘 팔리지 않는다. 주변에서는 "김규환이 아직까지 살아있는 것이 신기하다"고 할 정도다. 그래도 꿋꿋이 그림을 그린다. 물감을 사기도 액자를 만들기도 어려울 때가 있다. 가끔은 공사장에서 버려진 나무 판자가 액자로 변신하는 경우도 있다. 그는 "화가는 화가 많이 나는 직업이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만약 그림을 계속 그릴지 고민하는 후배가 찾아온다면 그에게도 끝까지 그림을 그리라고 말해줄 것이다. 일정한 수입이 없어 생계가 힘들지만 배고프든 힘들든 그래도 끝까지 가라고. 이유는 한가지, 행복하니까.
 
고삐를 풀다
 

어느 순간 그의 소는 고삐를 풀어버렸다. 코뚜레도 벗어버렸다. 그의 소들이 자유를 찾은 것이다. 이제는 여행도 다닌다. 도시로 나오기도 하고 들길을 걷기도 한다. 삼미시장 입구를 서성이기도 하고 네온사인이 환한 신천동 거리를 걷기도 한다. 
 

소만을 고집하던 그의 작품도 조금씩 다양해졌다. 요즘은 도마 위에 그림을 그린다. 생선, 고추, 황태 등. 도마 위의 그림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선명하고 활기가 있어 보였다. 
 
작년 장마가 끝난 후 고향에 갔다가 개울가에서 떠내려오는 도마를 발견하고 그 위에 고등어를 그리며 시작했다. 의외로 사람들의 반응도 좋았다. 도마 위의 그림은 봐서 즐겁고 그리면서도 재미있다.
 

김규환 화가의 그림 소재는 지극히 시골적이다. 8년을 살아온 시흥은 자연환경이 좋아 그림의 소재가 다양한 곳이다. 한 번씩 미산동에서 갯골생태공원까지 두 시간을 걸어 나가본다. 옛염전 일대도 그가 좋아하는 장소이다. 갯골과 들길이 주는 자연은 그와 정서적으로 맞닿아 있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텔레그램 URL복사
URL 복사
x

PC버전

Copyright ⓒ 시흥장수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