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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아흔의 문학소녀, 시는 내 운명

청춘 문학도 전귀정 선생님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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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기자
기사입력 2012-04-19

▲ 전귀정 선생님의 신작시/ 장수동은행나무     © 이정우
 
아흔의 나이에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이냐고 누군가 물어 온다면 당연히 그럴 수 있다며 마치 자신을 내보이듯 자랑스럽게 소개 하고픈 멋쟁이 문학할머님을 만났다. 전귀정선생님을 만나던 날은 안개가 한나절까지 껴 있었고, 거동이 불편하신 건 아니지만, 어르신을 바깥에서 따로 뵈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뭐부터 여쭤봐야 할지 얼른 갈피를 못 잡았다. 

일단 뒷자리에 모시고 장수동에 있는 800년 은행나무가 있는 곳을 향했다. 고목에서 파랗게 은행잎이 날 때, 가만히 들여다보면 너무 귀엽고 신기했던 기억이 있었는데, 선생님께서도 800년 된 은행나무에 대해 마침 시를 쓰고 계셨다고 하신다. 겨우내 메말랐던 가지에 아주 작은 잎눈들이 움트기 시작을 한다. 웅장한 가지들이 친 가지들, 그리고 또 잔가지들이 팔 벌려 아흔의 멋쟁이 문학도를 맞이해준다. 

▲ 팔백년 장수은행나무 앞에서     © 이정우

선생님은 문학공간에서 시부문 신인당을 받으셨고, 문화예술봉사상과 문화예술발전상(시장상)과 작년 연말에 경기도예총회장상을 받은 바 있다. 지금은 [시향문학]과 [시흥문인협회]에서 문학 활동을 하시고 계신다. 저서로는 [나그네의 땅]과 5인 시집[내 작은 별은 어디에]가 있다.

정확히 1922년생이신 전귀정선생님과 문학과의 만남은 선생님이 예순다섯 되시던 해에, KBS광주방송국에서 주최하는 주부백일장에서 장원을 하면서부터였다. 딸의 집에 다니러 가셨다가 딸의 권유로 긁적거려 봤던 것이 장원이라는 기쁨을 준 후부터는 문학이라는 개념을 몰라도 짧게 메모를 하면서 문학의 꿈을 키우셨다. 지금도 선생님은 그때 장원의 영광을 안겨준 ‘행주치마’란 시를 망설임 없이 암송 하신다.
▲ 자작시 "돌산도"를 손수 적어 주시다 ©이정우

식사하면서 시 한 편 보고 싶다했더니, 즉석에서 예전에 써 두었던 시를 척척 적어 내려가신다. 나이 아흔에 자신이 쓴 시를 서슴없이 노트에 적어내려 갈 수 있는 어르신은 아마도 없을 거다. 물론 젊은이도 그렇게 하지 못 할 거다. 

“우리 자랄 땐 다 그랬지요. 소녀시절엔 문학을 동경하기도 했지만, 결혼 하고, 삶에 매여야 했고, 6.25도 났고, 정국이 얼마나 시끄러웠나요. 문학요. 그땐 생각할 틈도 없었지요.” 낙서도 시간 된다는 것을 알았고 혼자서 하는 낙서보다 진정한 문학의 길을 걸어보고 싶었던 차에 이웃에 사는 박영만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이연옥 회장(현시흥문인협회)을 만나게 되어 본격적인 문학을 하게 되었다.

그때가 일흔일곱이 되신 해였다. [고향생각]이란 문학 동아리에서 보여 준 선생님의 열정은 그 누구도 따를 수 없을 만큼 놀라웠다고 회고를 하면서 “그때 나이가 많다고 망설이시는 선생님을 찾아가, 친정엄마처럼 잘 모실테니 함께 문학을 하자고 했지요.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시고, 시 써오시고, 정말로 우리 젊은 사람들이 오히려 선생님께 많이 배웠습니다.” 지금도 선생님은 [시향문학]과 [시흥문인협회]에서 식지 않은 열정을 과시하신다. 

제일 맘에 드는 시는 어떤 거냐고 여쭤봤더니, “내 작은 별은 어디에”라고 하신다. 2007년 원로작가 5인 시집의 제목이자 선생님의 작품 제목이다. “우리들 모두가 똑 같은 생각을 할 거 같아요. 소중한 꿈들을 가슴에 담고 살지요.” 시를 왜 쓰는냐는 질문에 일종의 운명 같은 걸 느낀다고 하셨다. 슬프거나, 괴로울 때 유일한 위안이 되는 것이 시다. 낙서를 하면 가슴에 맺힌 어떤 응어리들이 뚫리는 거 같다. 인생의 마지막 길에도 시가 있기에 행복함을 느낀다는 아흔의 문학도. “한편의 시를 읽으면 행복해요. 가진 거 없어도 그냥 맘이 행복해 지지요. 잠자기 전에 꼭 한편씩 읽어요. 요즘엔 시보다 성경을 주로 읽는 편이지만요.” 

▲ 벚꽃 흐드러진 비둘기 공원에서     ©이정우
봄날 벚꽃 흐드러지게 핀 비둘기 공원을 함께 걸었다. 꽃봉오리만 빨갛게 매달렸더니 어느새 활짝 피어서는 만개를 했다. 활짝 핀 공원에서 활짝 웃으시는 선생님 사진을 찍어 드리고 싶었는데, 자꾸 멀리서 찍으라신다. 주름살 보이니까. 아흔이면서 절대로 아흔이 될 수 없는 귀여우신 어른이시다. 이젠 늙어서 정말로 볼품이 없다시는 선생님께 아흔 넘은 할머니 중에 입술에 립스틱 바르고 다니는 할머니는 못 봤다고 했더니 웃으신다.

아드님과 전화연결이 되어서 선생님은 어떤 분이신가 여쭸더니,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시는 편이고, 절제도 확실하고, 모든 것이 분명하시다며 “어머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제가 어머님께 얹혀살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삼 년 전부터 교회에 나가시는데, 열심히 신앙생활 하시는 모습이 참 좋습니다. 어머님과 오래 행복 하고 싶습니다.”라고 하시는데, 그 목소리에서 선생님의 성품이 고스란히 스며있는 겸손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얼까 궁금하다 했더니, “자식들 잘 되고, 내가 죽은 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 줄 수 있는 좋은 시 딱, 한 편만 쓰고 싶은데, 그리 될지 모르겠어요.” 물론 가능하다고 말씀 드렸다. 선생님의 성품으로 보나, 그 동안의 독서량으로 보나 얼마든지 이룰 수 있는 꿈이다. 꼭 그렇게 되길 함께 빌어 보며, 동행해 준 아흔의 전귀정 선생님께 감사의 맘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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