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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번째 '구름을 몰고 오다' 소금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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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숙
기사입력 2009-01-03

▲ 37번째 '구름을 몰고 오다' 소금창고의 남겨진 기둥과 벌판의 구름     © 최영숙


  2008년 11월 하늘을 보니 구름들이 그득 차 있었다. 포동벌판으로 차를 돌렸다. 37번째 ‘구름을 몰고오다’ 소금창고가 있었던 자리에 섰다. 예전에는 소금창고가 있었으나 이제는 소금창고 기둥 몇 개만이 덩그러니 남겨진 터를 바라보았다. 창고가 없으니 구름이 이 삭막함을 감춰주듯 하늘 가득한 뭉게구름을 보면서 또 다른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었다.
 
 

▲ 2004년 37번째 '구름을 몰고 오다' 소금창고     © 최영숙



  이 창고를 생각하면 구름을 몰고 오는 듯하던 어느 해 여름이 떠올랐다. 그해 여름은 찬란했고 창고는 온전했었다.

 

▲ 구름 비천무     ©최영숙



    포동벌판에서 아름답지 않은 풍경은 없었다. 구름, 바람, 빗소리, 눈길까지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구름들 또한 언제나 여러 모습을 보여주었다.  노을이 지고 있는 하늘이 마치 선녀들이 비천무를 추는 듯했다.
 
 

▲ 포동 벌판의 구름 물고기  헤엄치다     © 최영숙



  어느 날 벌판에 서면 바다 속을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들을 만나기도 했다. 이곳의 풍경들은 시시각각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 포동벌판의 구름 새, 구름 거북이  모습     © 최영숙


  저 거대한 구름 새는 어디로 날아가는가?  그러나 다시 한 번 쳐다보면 거북이가 물속을 헤엄치는 듯했다. 포동벌판에 서 있노라면 온갖 상상의 세계를 헤엄쳐 다닐 수 있었다. 그래서 늘 즐거웠고 행복했다.  이곳은 마음에 꼭 드는 곳이었다.
 
 

▲ 37번째 '구름 몰고 오다' 소금창고 앞의 버드나무     © 최영숙



  2004년 구름을 머리에 이고 당당히 서 있었던 소금창고의 풍경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누구에게나 지난 시절이 있다. 이곳 소금창고도 마찬가지였다. 37번째 ‘구름을 몰고오다’ 소금창고와 지냈던 지난 시절을 기억했다. 소금창고가 사라진 이곳이 37번째 소금창고가 있던 방향이라고 가르쳐주는 것은 나무 한 그루였다.

 

▲ 37번째 소금창고와 자전거     © 최영숙


  
 이 방향의 끝자락에서 만났던 37번째 창고는 2004년까지는 형태를 온전히 갖추고 있었다. 소금창고가 있는 자리는 염전 바닥보다 높아 배수가 잘되었다. 농토로써 적합했다. 그래서인지 소금창고가 불타고 얼마 후에 가보면 대개 농토가 되었다.
 
37번째 창고 앞에 농부의 자전거며 옷가지가 간이 헛간에 함께 있었다. 예전에는 거인창고 뒤에 또 다른 소금창고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창고가 떨어져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그전의 풍경을 알 수 없었기에 자신이 바라본 풍경이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세상의 어느 풍경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다.

 


▲ 37번째 '구름을 몰고 오다' 소금창고 가을 풍경     © 최영숙



 방산대교에서 바라본 27번째 '겨울새' 창고처럼 이곳 창고도 홀로 뚝 떨어져 있었다. 무리에서 떨어져 홀로 있는 풍경은 바라보는 사람을 쓸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무리에서 떨어져 있는 풍경은 그만큼 여유로움도 가지고 있었다. 세상은 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홀로 있는 만큼  바라보는 시야가 넓었다. 풍경들은 바라보는 방향따라 변했다.
 
  너른 벌판에 온갖 염생식물들이 돋아났고  천이현상에 따라 새롭게 자리를 잡는 식물들까지 포동의 가을 벌판은 풍부하고 화려했다. 마치 온 산이 울긋불긋 단풍이 든 설악산 같았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 37번째 '구름을 몰고 오다' 소금창고와 태산아파트 풍경     © 최영숙


 
 태산 아파트를 뒤로 두고 쓰러질듯하면서도  제비처럼 경쾌하고 날렵하게 서 있는 소금창고를 보며 여러 생각들이 스쳤다. 처음에 이곳에 소금창고들이 늘어섰을 때 새우개 마을에서 바라본 풍경은 번쩍번쩍 웅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이제 소금창고에서 태산아파트를 바라보면 70년의 격차가 보여주는 소금창고와 태산아파트는 묘하고 아슬아슬한 세월의 균형을 맞추고 있었다. 한 세대를 풍미했던 역사는 그렇게  공존했다.
 
 

▲ 37번째 소금창고와 눈,  논이 된 옛 염전의 현재 모습© 최영숙



눈 내리던 날 다시 만났다. 이제는  논들과 함께 멀리 보이던 소금창고의 모습도 기억 속 풍경으로 스며들었다.

 

▲ 37번째 소금창고의 구름 사다리     © 최영숙



이곳은 다음을 기약하지 않았다. 다음에 갔을 때는 반쯤 무너져 내려 하늘로 뻗은 사다리를 만났다. 이곳의 소금창고도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한 귀퉁이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다.”는 속담을 이곳에 있으면 저절로 알게 되었다.

 

▲ 37번째 소금창고와 흐드러지게 핀 민들레꽃들     © 최영숙



  
지붕을 보면 무너져 내린 창고의 풍경이 사다리를 만들고 있었지만 소금창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민들레꽃이 무리지어 피어 있었다.

스러져가는 창고와 함께 무리지어 있는 꽃들을 만나면 생성과 소멸은 늘 한 가지에 피어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세상은 균형을 잡아간다는 생각을 했다.

 
 

▲ 37번째 소금창고에 함박눈꽃 피다     © 최영숙



     다시 겨울이 되었다. 지천으로 피어나던 민들레꽃이 이제는 눈꽂으로 변했다.
 
 

▲ 2006갯골축제와 37번째 소금창고     ©최영숙


  
 2006년 갯골축제가 열리는 행사장 모습이 멀리 보였다. 37번째 ‘구름이 몰고 오다’ 창고자리를 알려주는 것은 커다란 버드나무 한 그루가 서 있기 때문이었다. 나무 수령으로 보아 예전에 이곳에서 소금을 생산할 때 있었을 듯했다. 염부들의 땀을 식혀주던 나무가 이제는 방향을 일러주는 나무가 되었다.

 
 

▲ 37번째 소금창고의 앙상한 모습     © 최영숙



 생선뼈를 바른 듯 앙상한 소금창고가 서 있었다. 기우뚱 기울어진 소금창고는 발 한 번 슬쩍 걸면 우당탕 넘어질 듯 위태하게 서 있었다.

 

▲ 콩밭과 논을 건너 저 멀리 37번째 소금창고가 보이다     © 최영숙



포동벌판이 무한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 광활함 때문일 것이다. 콩밭과 논을 지나 펼쳐진 벌판은 커다란 소금창고들도 조그만 점으로 보이게 했다.
 


 

▲ 37번째 소금창고와 붉은 깃발     © 최영숙



37번째 ‘구름을 몰고 오다’ 소금창고도 불길에 사라졌다. 그리고 누군가에 의해 농사가 지어졌다. 소금창고가 파괴되고 1주년에 이곳을 찾았을 때 이곳에 붉은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포동벌판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붉게 펄럭이는 깃발이 알 수 없는 불안감을 가지게 만들었다.

 

▲ 37번째 소금창고, 버드나무, 말, 차, 구름 함께 만나다.     © 최영숙



 2008년 11월 구름을 몰고 오는 창고에 다시 섰다. 창고는 사라졌고 이곳의 풍경은 또 새로웠다.

소금창고의 기둥과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 승마하는 사람,  자동차, 하늘을 뒤덮은 구름까지 이곳은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 37번째 기둥조차 뿌리 뽑히다     © 최영숙



늘 그렇듯이 다음에는 또  변해있었다. 그나마 몇 개 남겨졌던 소금창고 기둥이 농사를 짓는데 방해가 되었는지 모두 뽑혀서 경계를 이루는 표지로 남겨졌다. 

세상에 가치를 두는 기준은 모두 다르다. 일용할 양식을 심고 가꾸는 것처럼 고귀한 것은 없다. 그러나 소금창고가 사라지고 그나마 조금 남겨졌던  기둥조차 뽑힌 모습을 보면 괜히 마음이 상했다. 

그동안 정을 주었던 사물이 무너지고 사라지는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은 비록 소금창고의 기둥일지언정 귀했던 것이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그 창고의 옛 모습을 떠올리고 추억했을 것이었다.

 
 


▲ 37번째 '구름을 몰고 오다' 소금창고에서 바라 본 36번째 '거인' 소금창고     © 최영숙



 37번째 ‘구름을 몰고 오다’ 소금창고에서 바라본 36번째 ’거인‘ 소금창고의 모습을 보았다. 이제 창고들이 사라진 시간차만 있을 뿐 이제는 흔적만을 느낄 수 있다. 창고들의 옛 모습을 보는 일은 흐르는 시간을 어찌해 볼 수 없었던, 또 사람들의 힘에 의해 사라졌던 소금창고들의 옛 모습이었다.

 

▲ 37번째 '구름을 몰고 오다' 소금창고 모습     © 최영숙



 이곳이 채마전이 되기 전의 창고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흘러간 시간마다 이곳이 바뀐 풍경을 기억했다.

예전에 이곳은 바다였고, 염전이었고, 소금창고가 있었고, 다시 채마전이 되었다.

이곳이 어찌 변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수도권 근교에 이렇듯 친환경적으로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곳도 없다. 시흥에 마지막 남은 허파 같은 이곳에 소금창고들이 다시 서고 현재와 가장 가까운 모습으로 남겨지기를 바란다.
 
 

▲ 37번째 소금창고 앞의 버드나무, 봄을 기다리다     © 최영숙



이곳 사진을 담으면서 가장 많이 느낀 것은 현시점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이었다. 창고들이 늘어섰고 그 창고들은 하나씩 사라졌다. 이제 이 방향의 그 즐비했던 소금창고들은 한 동도 남아있지 않다.
 
어느 날 왔을  때 불에 탄 소금창고의 잔해를 보면 마음이 몹시 아팠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 둘 씩 모두 사라졌다. 늘 그때마다 그날 마지막으로 본 풍경이 가장 아름다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소금창고들이 한 동도 없다. 그러나 현재가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소금창고들을 잃으면서 가슴속 깊이 깨닫게 되었다. 


이 벌판에 생명을 불어 넣어주고  아름다움을 덧붙이려면 소금창고들은 다시 서야한다고 생각한다. 이곳을 알았던 사람들은 이곳의 아름다움을 보았지만 이곳이 어떠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도 소금창고들로 인해 더욱 풍성해지는 이곳 풍경을 꼭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잃었던 이곳의 완벽했던 아름다움을 모든 사람들이 느끼기를 기대한다. 
 
봄이 되면 저 버드나무는 겨자빛 나뭇잎을 새초롬하게 내밀 것이다. 벌판에 서서 이미 다가오는 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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