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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문화원에서 이문재 시인의 강의를 듣다.

인문학이 있는 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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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옥
기사입력 2017-04-10

   

▲ 이문재 시인     © 최영숙

 

지난 46일 오후 7시 시흥문화원의 문화프로그램 인문학교실에서 두 번째 순서로 이문재 시인의 인문학이 있는 시 이야기 강의가 있었다.

 

첫 번째 이야기를 힐렐 (2천 년 전, 유태인 대학자)의 말을 거론하면서 시작된 강의는 홀로 설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옆의 사람이 힘들다. 나 자신이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 말이다.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언제 행복하겠는가.

 

내가 나 자신을 위하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위하겠는가.

내가 나 자신만을 위한다면 나는 무엇이 되겠는가.

그리고 지금 행동하지 않는다면 언제 하겠는가. - 힐렐(2천 년 전 유태인 대학자)

 

하느님, 우리에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을'

우리가 바꾸어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무엇보다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우리에게 주서소.' 

- 라인 홀트 니부어(미국의 신학자 1892~1971)

 

그는 지하철 출퇴근 시간이면 밀려드는 인파 속에서 콩나물 인간으로 살아야하나, 걱정을 하다가 지하철 유리창의 시를 보면 역겨움이 느껴진다고 한다. 하루 종일 일하고 피곤한데 지하철 유리창의 시들은 배고픈 사람 앞에서 사탕으로 놀리는 조롱거리 같이 느껴진다고 한다.

 

사막

                                                오르랑스 블루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파리 지하철공사. 시 공모 1등 당선작)

 

누가 운전석에 앉아있는가? 운전은 빨리 가는 게 아니라 설 줄 알아야한다. 그리고 주차를 할 줄 알아야한다. 적절할 때 차를 세우고 풍경을 감상하거나 심호흡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인생이란 운전석에 누가 앉았나? ‘바로 나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대부분은 운전석에 내가 그리고 누군가 앉아있을 것이다. 아픈 가족, 어려운 가족, 어떨 땐 돈, 어찌 보면 밖에서 누군가의 삶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내 운전석에 누가 앉아있나, 를 생각하면 내가 어떻게 사는지 누굴 위해 사는지 알 수 있다.

 

사막                 

                           이문재

사막에 

모래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모래와 모래 사이다.

 

사막에는

모래보다

모래와 모래 사이가 더 많다.모래와 모래 사이에

사이가 더 많아서

모래는 사막에 사는 것이다

 

오래된 일이다 

자기와 자기 자신과의 대화라면 관계다. 나와 타자 관계를 못하면 쓰러진다. 모래알들이 생명을 만드는 토양이 되려면 사이를 존중해야한다. 차이는 사이에서 생긴다. 모래와 모래에서 사이를 본다. 다양성에 근거를 두면 함께 사는 사람들이 안타깝게 사이와 차이를 중재한 관계를 다시보고 다른 모래알과 함께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 사이와 차이를 긍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 이문재 시인의 문학 강좌     ©최영숙

 

두 번째 이야기는 분단문학에 대해서다.

시인은 부모님이 황해도 옹진 사람들이다. 6,25 때 이남으로 피난을 나온 피난민이셨다. 시인은 자라면서 부모님이 이북에서 내려올 때 겪은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필자 또한 부모님이 황해도 옹진 분이시다. 이문재 시인처럼 이북에서 피난 나오던 이야기며 바다에서 배를 타고 고생하던 이야기며 인민군한테 쫓기던 이야기들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자랐다. 그래서 분단문학에 대해서는 이문재 시인의 뼈저림처럼 듣는다. 김종삼 시인의 시민간인을 보면서 그 때의 처절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이문재 시인이 제시한 시민간인과 같은 시와 글들을 분단문학이라고 일컬는다.

 

민간인                     김종삼

 

1947년 봄

심야

황해도 해주의 바다

이남과 이북의 경계선 용담포

 

사공은 조심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을 모른다.

 

위의 시를 보고 함부로 도덕적 잣대를 들이 댈 수 없다. 다른 가족을 살리기 위해서 갓난아이를... 극한 상황에서는 비일비재하다.

 

여기에서 시인은 감성과 통각에 대한 시 이야기로 넘어간다. 정치인들의 감성이 살아있다면 이렇게는 안살아도 된다. 시는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받아들여서 미학적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아픔과 절망을 통각한다면 정치인들이 이 사회를 이대로 두지 않는다. 왜 기업은 살고 노동자는 죽어야할까? 기업이 살기 위해서 종업원들이 죽여야 하나 반기업 정서가 많아야한다. 인간이 포기할 수 없는 욕구. 포기하면 그리움도 기다림도 없다 

호모 사피엔스 인간이 들어가면 땅은 멸종이 된다. 시인은 식량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식량주권 식량안보 정치적 주권보다 식량주권이 더 큰 문제다. 시가 이런 걸 문제제기해야한다. 에너지문제. 식량문제 계속 거론해야한다. 식량이 이지경인데 꿈을 펼쳐라. 사이좋게 살아라, 할 수 없다. 시인이 해야 할 문제 마지막 인간이 이걸 하면 최초의 인간이 나타날 것이다. 고기 그만 먹어야 된다. 돼지 닭 수명이 10-20년이다. 부화 후 한 달이면 식용으로 이용한다니 그 생명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지겠는가. 감성, 통감이 사라진다

 

팔원                            

                                백석

차디찬 아침인데

묘향산행 승합자동차는 텅 하니 비어서 나이 어린 계집아이 하나가 오른다

옛말속같이 진진 초록 새 저고리를 입고

손잔등이 밭고랑처럼 몹시도 터졌다

계집아이는 자성으로 간다고 하는데

자성은 예서 삼백오십 리 묘향산 백오십 리 묘향산 어디메서 삼촌이 산다고 한다

새하얗게 얼은 자동차 유리창 밖에

내지인 주재소장 같은 어른과 어린아이 둘이 내임을 낸다

계집아이는 운다 느끼며 운다

텅 비인 차 안 한구석에서 어느 한 사람도 눈을 씻는다

계집아이는 몇 해고 내지인 주재소장 집에서

밥을 짓고 걸레를 치고 아이보개를 하면서

이렇게 추운 아침에도 손이 꽁꽁 얼어서

찬물에 걸레를 쳤을 것이다

 

백석의 팔원은 감정개입이 정확하게 된 시로 1936년 발표된 시다. 1988년 해금 후 읽은 수 있었다. /텅 비인 차 안 한구석에서 어느 한 사람도 눈을 씻는다/-감정이입 - 감성통감, 태인의 고통을 내 슬픔으로 만드는 것 뿐만 아니라 상상을 하게 된다.

대상과 만나는 과정은 1, 차감게 만나 2, 고통을 자기 것으로 3, 감정이입으로 뜨거워져. 4. 더 뜨거워진다. 대상이 없는 시는 없다. 시는 이야기다. 좋은 시는 완결이 아니라 읽는 사람이 상상하도록 만든다.

 

위 시에서 소녀는 지금 살아있으면 93세 정도 되었을 것이다. 그녀는 어떤 남자와 결혼을 하고 1,4후퇴 때 내려왔을까? 3,8선은 넘었는지. 혹은 만주로 갔을까. 목포로? 등등 여러 가지 상상을 하게 된다. 그런 상상을 하게 되는 건 독자의 몫이다. 제대로 된 시는 창작자로서의 시가 아니라 독자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다.

 

▲ 이눈재 시인 문학강좌를 하다     ©최영숙

 

세 번째 이야기는 나를 위한 글쓰기다. 나를 위해서 글을 써 보았는가? 의문을 제시한다. - 글쓰기는 불편하고 낯설고 어렵다.

말하기와 듣기 - 20만 년 전 호모 샤피엔스가 말하기 듣기를 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 것은 7만 년 전부터다. 이야기를 하면서 인간이 상상력을 갖고 언어발명이 생기고 뒷담화부터 일어났을 것이다. 첫 번째 뒷담화는 사냥 후 무용담으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무용담으로 사냥기술, 정보, 삶의 뒷담화가 필요했을 것이다.

읽기와 쓰기 - 한국사회에서 읽기 쓰기는 이제 50여년 정도 되었다. 글 잘 쓰는 사람 우리사회에서 존중받지 않는다. 만약에 그랬다면 대학에 글쓰기 과목이 있었을 것이다.

쓰기는 생각하기다. 학교에서만 가르치기를 할 필요가 없다. 창의적인 것이 가장 빠르게 되는 건 바로 글쓰기다. ‘나를 위한 글쓰기는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고 이것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를 위한 글쓰기에서 첫 번째가 내 생애 성장기에 있었던 최고의 순간을 쓰는 일이다. 반응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생각 한 번도 안 해보았다.’가 대부분이다. 정차하지 않고 주차하지 않는 삶과 같다. 우리들의 삶은 뒤돌아보는 삶이어야 한다.

 

자기 성찰은 관계를 재발견하게 된다. 글 속에서 자기만 나오는 사람은 병원에 가야한다. 원수와 나의 관계를 재발견하는데 성찰은 가장 활실하다. 재발견에서 치유가 나타난다.

목표 중 1이 자아 존중감 발견이다. 자존감이 낮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글쓰기는 마찬가지다. 내가 못하면 안 된다. 자존감이 낮으면 연애도 못한다. 글쓰기를 통해서 성장기 어떤 때를 잡아서 관계를 다시 보다보면 자신감이 생긴다. 자신감이 생기다보면 글을 쓰게 되고 당당해진다.

 

글을 못 쓴다는 건 비극이다. 글쓰기를 통해서 성장기 잊지 못할 일을 글로 풀어내본다.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쓰다보면 문장이 좋아진다.

1, 내생에 최고의 순간 : 사춘기청년기 -100% 행복, 불행의 순간은 없다. 여기에 작은 빛줄기가 있다. 나는 항상 선하고 착한 피해자다. 그런데 글을 쓰면 양방향이다 가해자는 악하고 피해자는 선하게 된다.

2. 잊을 수 없는 장소, 노래, 선물, 음식 이야기. 이런 것들로 4~5편 정도 쓰면 자서전 쓰는 과정이 된다. 게다가 성찰하는 글을 쓰다보면 자존감 넘치는 자서전이 된다.

3, 내가 살고 싶은 집이나 마을 이야기 -미래설계. 넓은 텃밭, 거실은 마을사람 같이 쓰게 될 것이다.

 

털어 넣으면 마음만이 아닌 몸도 건강해진다. 쓴 사람은 안 쓴 사람보다. 한 달, 1- 면역력이 높아져서 글 쓰기치유가 된다.

 

글쓰기는 창의적이고 낯익은 곳에서 낯선 것을 발견하고 언어로 표현하게 하는 게 문학이다.

시를 잘 못 쓰는 이유는 시를 1순위로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를 내 삶의 1순위로 올려보아라. 삶의 1순위가 아니면 잘 쓰려고 할 필요가 없다. 1순위로 올려놓아라. 도둑놈도 1순위를 도둑으로 놓았기 때문에 도둑질을 한다. 1순위로 올려놓지 않는데 당연히 안 써진다.

 

모든 시읽기는 오독이다. 잘못 읽는 것이 맞다. 이해하지 못하는 시는 읽지 말아라.

글은 낮에 써라 낮에 메모를 해 두라. 주제에 대해서 메모가 많을수록 글이 좋아지는 건 당연하다.

 

 

▲ 단체사진을 담다     ©최영숙

 

 

진정한 여행

                                                         나짐 히크메트(류시화 옮김)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여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할 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탄탄한 문학경력이 있는 시인은 두 시간동안 낮고 조용하지만 저돌적이고 힘이 있는 목소리로 청중을 압도했다. 그가 지니고 있는 철학이 확신에 찬 강의로 듣는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고 집중하게 한다. 그가 예로 들어주는 설명이나 말에서 그가 자연주의자임을 알 수 있다. 한동안 시인의 목소리가 귀에서 떠나지 않는다.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을 슬쩍슬쩍 건드려 주었기 때문이다.

 

강의의 핵심처럼 남는 이야기를 해 보면.

삶의 운전은 빨리 가는 게 아니라 멈출 줄도 주차를 할 줄도 알아야한다. 때때로 차를 세우고 풍경을 감상하거나 심호흡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모래와 모래 사이, 사이와 차이를 긍정하면서 모래알과 같은 관계로 모래알로 살아야한다. 분단민족으로써 처절한 분단문학에 관심을 가져라. 감성, 즉 감수성을 가지고 통각을 하며 살아라, 정치인들이 감성을 지니고 통각을 하며 산다면 이사회가 달라질 것이다. 나를 위해서 글을 써 보았는가. 시 쓰기가 잘 안 되거든 시 쓰기를 삶의 1순위로 올려놓아라. 시인의 저돌적인 목소리만큼이나 강의 내용들이 저돌적으로 가슴에 박혀왔다.

 

 

 

이문재 시인 프로필

 

시인 이문재는 1959년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2년 「시운동」 4집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생태적 상상력’의 시인으로 김달진문학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지훈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산책시편』, 『마음의 오지』, 『제국호텔』,『지금 여기가 맨 앞』이 있고, 산문집으로는 『내가 만난 시와 시인』,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 등이 있다. ‘시사저널’ 취재부장과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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