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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석 시흥예총 명예회장을 만나다

열정과 이상! 청년의 심장으로 살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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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진
기사입력 2017-12-29

 

▲ 박한석 시흥예총 명예회장     ©최영숙

 

예총 사무국 문을 열고 들어서는 박한석 명예회장의 모습은 늘 그렇듯 바쁨이 묻어난다.

시흥예총회장을 내려놓고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 음악인으로서, 예술인으로서 한 해를 열심히 보낸 그의 모습에는 활기가 묻어난다. 시흥예술대상 수상을 축하하며 잘 지내시냐는 물음에 제가 상을 수상할 자격이 되는지 모르겠다. 감사드린다.”며 멋쩍어 했다.

 

시흥시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부모님과 큰 형님께서 시흥시에 살고 계셔서 자연스럽게 오게 되었다. 강원도 평창이 고향이신 부모님께서 큰 형님의 직장이 시흥이다 보니 아들 따라 오셨고 난 그런 부모님 곁에 머물고자 시흥에 오게 되었다.

 

살면서 인생의 전환점이 있었다면 어느 순간이었는지

 

아마도 고등학교 시절 밴드부 주위를 어슬렁어슬렁 거렸을 때부터가 아니었나 싶다. 선배의 눈에 띄어 악기를 접하고 대학에 들어가서 전공한 후 음악인으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 여겼다. 현실의 냉혹함에 잠시 악기를 놓고 봉천동에서 강남에서 버리는 가구를 모아 중고가구대리점으로 개업해 경제적으로는 해소가 되어 안주하려 했는데, 어느 날 친구 찾아와 연주가의 손이 이게 뭐냐, 당장 그만두고 유학이나 가라.”고 권유하면서 독일로 유학을 가게 되어 제2의 음악인으로서의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것 같다. 그리고 귀국해서 민간단체인 서울심포니오케스트라에 8년간 호른연주가로 있으면서 예술단체로는 최초로 노조를 결성해 예술인들의 권익에 앞장서고, 전공생들 개인레슨으로 여유롭게 지냈다. 그런 시간도 잠시, 또 다시 지인의 권유로 인천시립교향악단 호른연주자에 도전해 현재까지 호른 연주가로 활동하고 있다. 일반인은 예술인들이 어렵게 생활하고 있음을 잘 모른다. 무대 위에서 빛나는 모습만을 보고 멋진 모습만 보여지고 기억되기에현실이 아닌 상상 속 인물로 여겨지기도 한다. 대중과 섞이지못하는 예술인, 그렇기에 예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이러한 시선까지 감내해야 하는 고독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고독을 이겨내지 못하고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도 있었을 현실과의 조우에서 경제적인 안주에 머물렀으면 오늘의 이 자리에는 또 다른 내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안의 뜨거운예술의 피는 나를 현실에 안주하게 두지 않았다. 예술인으로살아온 나날들이 나를 숨 쉬게 하였고 온전한 내가 될 수 있게 만들었다.

 

시흥음악협회 회장, 시흥예총회장을 역임하면서 아쉬움이 남는 일과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은?

 

우선 예술 활동과는 다른 단체의 장이 되어 활동한다는 것은 매력이 있는 일이다. 단체장으로서 할 일 또한 많은 것도 사실이다. 시흥음악협회 회장을 맡아 우선적으로 한 일은 예산을 높이는 일이었고, ‘전국음악콩쿠르를 개최해 시흥음악협회의 위상을 세우는 일이었다. 2004년 당시만 하더라도 예술문화단체에 예산을 주어야 한다는 걸 이해 못하는 공무원이 태반이었다. 그러한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 낼 필요가 있었다. 그런 공무원을 상대로 예술문화의 이해도를 높이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 같다. 예총회장... 예술인단체를 대표하는 자리이니만큼 음악협회 회장을 할 때와는 그 책임의 크기가 비교할 바가 못 되었다. 8개 단체를 아우르고 특성을 존중하면서 협회의 권익보호에도 애를 써야 했기 때문이다. 예산도 많이 올려놓았고, 예술이라는 반석을 올릴 토양도 다져놓았다고 자부한다. 2015년 시흥예총 및 각 협회에서 20여년 이상 지속해 온 사업들을 공모로 전환 시키면서 대두된 지역예술단체의 존립 위기에서 전국 최초로 예술인총궐기대회도 열어 그 반향도 컸었던 것 같다. 시흥시 문화예술진흥 조례의 개정을 이끌어 내었다.(시흥예총 및 각 협회 대표보조금 사업 조례 명시)지금 생각해 보면 예술문화의 보편성과 향유, 시흥예총 및 각 회원단체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고 책임감도 크기에 회원들 각자의 노력도 필수 불가결한 것이기도 하다. 많은 부분 아쉬움이 남지만 시흥예술을 담을 수 있는 인프라 구성을 위한 시간의 부족이다. 인적 인프라 못지않게 그 인적 인프라를 담을 수 있는 제반시설의 부재는 절음발이 예술을 시민들이 향유해야 하는 것이기에 못내 그 부분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현재 시흥윈드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겸 대표를 맡고 계시는데 시흥윈드오케스트라의 향후 거듭남에 있어 나아갈 점은 무엇으로 보시는지

 

시흥윈드오케스트라는 오케스트라 역사의 한 획을 긋고 있다고 자부한다. 오케스트라는 특성상 한 해 두 번 공연하기에도 벅차다. 2016년 신천동 복개천에서 시작한 신천음악5회의 연주로 지역주민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왔다. 개천을 흐르는 물소리와 윈드오케스트라의 화음은 봄을 생동감으로, 여름을 시원하게, 가을에 운치로 더해 지역 주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2017년 올해에는 신천달빛음악회로 개칭하여 폭우가 쏟아지던 날들을 제외하고 총6회의 일정을 모두 소화시키며 지역민들에게 음악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했다. 적은 예산으로 운영하면서 왜? 하느냐는 물음도 받지만 우리는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고 최선을 다하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우리의 진정이 통하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러한 노력이 국가에서 하는 사업 개천살리기로 이어져 야외공연장의 개관식이 오는 129일에 열린다. 독일에서 유학시절 눈이 오는데도 불구하고 산타복을 입고 연주를 하던 실버오케스트라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렇듯 독일에서는 실버오케스트라의 지원이 많았다. 롤 모델을 특정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것들은 본받고 시흥윈드오케스트라가 앞으로 해 나갈 일임에는 분명하다. 단원들의 열정과 수고가 이러한 결과를 이루리라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예술인으로 살아온 여정 속에서 음악 아닌 다른 분야에서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아마도 사업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형제들이 모두 자그마하지만 사업을 하고 있고, 나 또한 사업적 수완이 있는 것 같다. 이건 생각일 뿐이고 기본적으로 난 연주가이고 정년퇴임을 한 후 음악 교육 사업(현재 오케스트라바우처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을 구상 중에 있으며, 실버오케스트라와 함께 제2의 인생을 살아 갈 것이다. “난 커서 음악연주자가 되었고, 그나마 잘하는 것 또한 음악이며 음악을 하면서 되고 싶었던 훌륭한 연주자는 못 되었어도 예술인으로 살아왔다. ‘이젠 무얼 하고 싶은 걸까?’ 나에 대한 질문이다. 살아온 과정과 살아갈 여정 사이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이 과연 무엇일까?”를 늘 고민한다는 박한석 시흥예총 명예회장 또는 시흥윈드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의 눈빛은 언제나 형형하게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빛을 발한다.

 

 

 

 

2017 예술시흥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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