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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공간을 뛰넘는 아련한 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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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고 2학년 최해린
기사입력 2015-01-18

 

▲ 김우식의 '딸네집 가는 길 '     


우리 가족에겐 증조할머니보다 더 많이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분이 한분 계시다
. 우리 가족은 그분을 일명 하나할머니라고 부른다. ‘하나 할머니라는 명칭은 할머니의 손녀 하나언니로부터 비롯된 명칭이다.

 

하나 할머니와의 인연이 시작된 것은 20년도 더 되었다. 처음에 어머니께서 큰 언니를 뱃속에 가지셨을 때, 아버지와 이런 저런 일 때문에 갈등이 잦으셨다고 한다. 아버지의 어리석음으로 가세가 계속 기울자 어머니께서는 너무 화가 나서 정신을 못 차렸다고 하신다. 그때 홀로 뱃속에 아기를 가진 채로 고뇌할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가슴속 눈물을 닦아주신 것은 한 마른 할머니의 주름진 손이었다. 외할머니가 걱정하실까 부모님께도 아무 말 못하던 어머니의 속을 풀어주시고 진심으로 걱정해주신 것은 옆집에서 찾아오신 하나 할머니이셨다. 그때 이후로 두 집은 자주 왕래하며 지냈다. 특히 어머니는 속상할 때 하나할머니를 친어머니 마냥 생각하고 가슴속응어리를 푸셨던 것 같다. 나는 나이가 어려서 하나할머니를 뵈면 무엇을 해드려야 할지는 몰랐지만, 할머니가 집에 찾아오시는 게 아무 이유 없이 포근하고 좋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내가 초등학생 때, 하나할머니가 이사를 가신다고 하셨다. 나는 그때이후 다른 사람들이 이사를 와도 하나할머니처럼 자주 왕래하거나 알고 지낼 시간도 없었거니와, 다들 매서운 눈빛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슬펐다. 어느 날 어머니께 물었다. “엄마, 하나할머니 요즘도 자주 오셔?” 어머니가 대답하셨다. “글쎄, 길 가다가 가끔은 만났는데, 요즘엔 통 안보이시네.” 어느새 나는 평소엔 나도 몰랐던 내 감정을 말하고 있었다. “하나 할머니 너무 뵙고 싶다.” 엄마는 잠시 쓸쓸히 미소 짓다가 이야기하셨다. “나도 그래. 주소를 알려주신 것 같은데 잃어버려서 또 다른 데로 가신건지 확인하러 갈 수도 없더라.” 그때 이후로 계속 나는 하나 할머니를 사진첩에서 확인하는 것으로 밖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쓰러지셨고, 치료와 회복을 위해 큰 대학병원에 입원하셨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자 몸이 많이 좋아지신 어머니는 외할머니 댁에 가서 할머니의 일을 조금씩 도우며 지내게 되셨다. 나는 기숙사에서 주말마다 나와 집에 가게 되었는데, 그날은 아마 토요일이었을 것이다. ‘딩동초인종소리가 들렸다. 집에는 언니와 나밖에 없어서 나는 나쁜 사람이면 어쩌지 생각하며 조용히 대답했다. “누구세요?” 밖에서 익숙하지만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하나 할머니여, 하나 할머니!” 그 순간 나는 희열을 느꼈다. 동시에 어떻게 찾아오신 걸까?’, ‘어떡하지, 엄마가 안 계신.’라는 생각을 하며 문을 활짝 열었다. 백발이 무성하고 허리는 더 구부정해진 채, 할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힘겨워하셨다. 나는 할머니를 집으로 모셨다. 얘기를 들어보니, 할머니는 어머니가 쓰러지시고 위급했다는 소문을 듣고 무척이나 걱정했지만, 거동이 힘드셔서 쉽게 찾아올 수 없었고, 한번 힘을 내서 찾아오셨으나 어머니께서 입원하셔 집이 비었었다는 것이다. 얘기를 나누는 도중 나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낯설었던 이유가 이이가 더 빠져서 그랬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간의 할머니의 소식을 들으며 나는 주름진 할머니의 손을 꼬옥 잡아드렸다. 지금 이 자리에 어머니가 계시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하나 할머니는 이 집을 잊어버리지 않으셨다. 10년 동안 살아가시면서 누추한 이 집을 잊지 않으셨고, 동네 슈퍼조차 갈 수 없는 몸으로 몇 년 동안 집밖의 외출을 일체 하지 않으시다가 4층까지 52개나 되는 계단을 하나 하나 쉬어가며 올라오신 것이다. 이대로는 할머니를 보낼 수 없다 생각하여,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와 어머니는 한참동안 대화를 나누셨다. 나는 할머니께 어머니의 전화번호를 적어드렸고, 또 할머니의 주소를 받아 적어 나중에 어머니께 갖다 드리도록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할머닐 배웅 나가 드렸다. 할머니가 너무 강력히 혼자 가실 수 있다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계단 내려가는 것만 도와드릴 수밖에 없었다.

 

최근 어머니께 물었다. “엄마, 어떻게……. 하나할머니 찾아갔어?” 엄마가 웃으며 대답하셨다. “당연하지, 엄마가 찾아갔지.” 그때 환하게 웃으시던 어머니의 얼굴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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