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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의 인물 선양전시’ 아쉽다

-애국청년 권 희(權憘) 선생, 시흥의 인물로 선정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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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성
기사입력 2016-10-24

 

시흥시는 10일부터 21일까지 2주간 ‘시흥의 인물을 말하다’ 선양전시를 시청 로비에서 실시했다. 시흥의 인물 선양사업은 해당 분야에서 오늘날 시흥시와 시흥시민의 형성과 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친 근ㆍ현대의 인물을 중심으로 발굴하여 선양해온 사업이다.

  

지난 2009년부터 시흥문화원의 주관 하에 1919년 3월 30일 당시 시흥군 수암면의 3.1 운동을 주도한 애국지사 윤동욱 선생, 군자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하여 지역 최초의 중등교육기관을 탄생시킨 교육자 최긍렬 선생, 서울 양평동, 난곡동, 목동 등지에서 강제철거로 삶의 터전을 잃게 된 도시민들과 더불어 우리시 신천동 일원에 복음자리(1977), 한독마을(1979), 목화마을(1985)을 건설하여 생활공동체의 가치를 실현한 빈민운동가 제정구 선생 등을 선정하여 선양해 왔다.

 

그러나 그동안 근 현대에 인물을 중심으로 발굴한 인물이 이 세분뿐인가 의아하고 너무 초라하다. 시 관계자는 “세 분 선생님은 지역 구성원들 모두의 선조 또는 선배라 부를 수 있는 분들이며, 이들의 생애와 업적을 계속 되뇌고 돌아보는 일은 후학이자 후배들이 당연히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규모이지만 전시회를 열게 되어 뜻깊게 생각한다.”고 하지만, 인물 발굴에 너무 무성의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왜냐하면 지난해에 새롭게 조명된 애국청년 권 희(權憘) 선생은 빠져있어 시 당국자자나 문화원 관계자들은 인물발굴에 무엇을 했는가 묻고 싶다.

 

권희 청년은 경기도 시흥군 군자면 장현리(안두일) 권준영씨의 장남으로 1900년10월 10일 출생하여 한학을 향리에서 공부하였다. 약관 20세때 (1919년) 군자면 도일시장에서 4월 7일 독립만세운동을 계흭하다 사전 발각되어 제포 구금중 악독한 고문으로 폐인이되어 1957년 12월 24일 사망한 인물이다.

  

장곡리의 장수산, 이종영 등과 함께 사발통문을 비밀리 마을에 보내어 대규모 시위를 모의하다 체포된 것이다. 경성지방법원에서 1년 징역형을 받고 형기를 마친 후 귀향하였으나, 고문 후유증으로 자녀를 낳지 못했다. 젊었을 때는 소작인운동을 일으켜 낭정호 지주의 선행을 기리기 위해 능곡동에 ‘낭정호 송덕비’를 세운바 있다.

 

 독립만세운동을 추진하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거사는 이루지 못했지만 20세의 젊은 청년으로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나섯던 그 정신은 우리에게 큰 교훈으로 남는다.

 

참고할 것은 3.1운동실록에 기록된 경성지방 법원 판결문과 대한매일신보, 황성신문, 동아일보 등의 기록을 찾아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시흥지역에서 이름조치 잊혀져 가는 인물 권희 선생은 분명히 시흥의 인물로 재평가되어야 한다. 애국열사, 의사로서의 위치에 당당히 서야할 분이기 때문이다. 우리 시흥지역의 애국열사를 재발견한 쾌거로 본다. 앞으로 시흥의 인물에 대한 조명과 더 깊은 연구가 지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시흥의 역사적 인물을 기록하기 위해 사단법인 한국효도회 시흥지역회에서 시흥시의 지원을 받아 발간한 ‘아름답고 활기찬 노년을 찾아서' 제 4집 ’당신은 희망입니다‘(2015년 12월간) 에 수록된 66쪽에 이르는 내용만으로도 시흥의 인물로 수록되어야 마땅하다. 

 

(시흥자치신문에도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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